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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정원
작성일:2010.07.16
조회수: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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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7.16 |
조회수 |
3,722 |
나의 정원(庭園)
내가 수리(修理)산 자락으로 이사한 것은 늦가을 이었다.
낙엽도 다 지고 난 수리산은 나뭇가지만 바람에 춤을 추며
스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이리로 이사한 것은 수리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우선 공기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빌라가 바로 산 밑에 위치하여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분위기가 좋았다. 이사하고 며칠 후 밤에 창문 커튼사이로 보이는 늦가을 밤하늘에 별이 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듯 수많은 은가루를 뿌려놓은듯 반짝이는 것을 보고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이런 하늘의 별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시내 아파트에서 보는 별이 이렇게 눈부시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사 온 마을은 농촌의 풍경이 남아 있어 나에게 목가적(牧歌的) 상념(想念)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정(淸淨)하다. 창문으로 별을 보며 나 어릴 때
고향 하늘의 별빛을 보는 듯 정겹고 무엇인가 가슴을 울리는 듯 하다.
이렇게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별을 보게 된 것도 이리로 이사한 덕분이다. 그리고 12월, 창문으로 내다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다, 온 산의 나무들은 가지마다 눈꽃을 피여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놓았다. 이런 경치를 아내와 같이 보며 우리가 이사를 잘했다고 눈으로 예기했다.
다음 날 아침 등산장비를 챙겨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로 내 발자국을 남기며 걸으니 이제껏 살아온 흔적을 남기는 것 같은 감상으로 젖어든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 덮인 산은 그야말로 깨끗이 빨은 흰 옥양목 천을 덮어 놓은 듯하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이 온통 눈부시도록 하얗다!
산을 내려오는 눈길은 내 발자국 소리가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낸다
마치 그 소리가 눈이 나에게 “당신은 지금 나의 하얀 가슴에 당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갑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리고 봄! 이것은 생각지 못했던 풍경이 나의 눈을 의심케 했다.
바로 창문 앞 언덕에 개나리가 황금을 뿌려놓듯 흐드러지게 언덕을 덮어쓰고 있었다. 온통 언덕을 황금카팻으로 깔아 놓았다.
봄의 전령(傳令)이 찾아 온 것이다. 나는 한없이 창문으로 봄의 전령을
내려다보았다. 이때부터 여기 수리산과 집 앞 언덕을 나의 정원으로 부르기로 했다.
4월말, 개나리가 황금 카팻을 걷어가자 곧 진달래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온통 핑크빛 카펫으로 언덕을 덮고 있었다.
문득 김소월의 시(詩)가 떠올랐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서소! ...
네모난 창문에 가득 찬 진달래의 향기가 마음을 설래게 한다.
정말로 그 위를 사뿐히 밟고 거닐고 싶다.
5월초, 진달래의 핑크빛 카펫이 사라지자 이번엔 연산홍의 붉은 향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인의 붉은 입술모양 도드라지게 네모의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기 핏빛처럼 붉은 꽃잎이 정열의 바다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저 붉은 정열의 바다에 몸을 뉘이고 지나간 청춘을 꿈꾸리라!
그리고 5월 중순, 녹음의 계절이 시작된다.
창문으로 보이는 내 정원에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활엽수, 밤나무, 깨죽나무, 전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등 그 외에도 나도 이름 모를 나무들이 녹색 옷을 입고 내 창문에 가득 담긴다.
어느 날 늦은 오후에 바람이 심술궂게 밀어닥치니 내 정원의 나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치 국악이 울리고 여인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듯 가지마다 나긋나긋 물결 같은 손짓이다.
때로는 간드러지게 추다가 바람이 크게 쏴아! 하고 불면 나무들은 서로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이마를 맞대고 한 무리가 되어 춤을 춘다.
바람은 지휘자고 나무들은 가야금, 장고, 아쟁, 피리, 등의 소리에 맞추어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여인네 같다.
달이 없는 밤에 숲속을 바라보면 어둠이 내 눈 속으로 빨려든다, 그 속의 어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어둠속에서 우는 쑥국새의 울음은 그리 기분 좋은 소리가 아니다, 쑥국! 쑥국! 하고 우는소리는 암흑과 함께 내 정원과 창문에 밀려들면 그 암흑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내 정원은 이렇게 극단적인 두 모습으로 보게 만든다.
이와는 달리 아침이슬이 나뭇가지와 거미줄에 수정처럼 매달려 있을 때 언제 암흑의 밤이 있었느냐는 듯 맑은 새소리가 내 귀를 노크한다.
그 중에서도 뻑~꾹! 뻑뻑꾹 하고 울어대는 뻑꾹새 소리는 처량하게 온 산에 퍼져 울린다! 아마도 밤새 몰래 남의 새둥지에 알을 내려놓고 새끼를 버린 슬픔으로 목젖이 붓도록 뻑꾹! 뻑뻑~꾹! 하고 울어대는 것 같다. 그 소리가 듣기 싫은지 장끼란 놈이 숲속에서 푸드득 하고 날아올라 숲속 저편으로 날아서 숨는다.
아침이면 까치의 깍깍깍! 짖어대는 소리에 잠을 깨곤 한다.
까치가 짖어대면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데 오늘 누가 오려나? 어릴 때 어른들의 얘기를 기억해 낸다.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한데 어울려 숲속의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연주한다.
무더운 7,8월 아파트 같으면 에어컨을 틀어 놓고도 덥다고 할 판인데 여기는 창문만 열어놓아도 시원한 바람이 거실로 들이닥친다.
그러니 선풍기는 아예 꺼내놓지도 않았고 에어컨은 창고에 넣어 둔 채다. 산위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숲속을 지나오면서 서늘한 바람이 되어 창문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책 한권과 돗자리를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로 나를 안아준다. 그곳에서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고 책을 펴들면 숲의 독특한 풀냄새와 나무들의 향기로 책속의 예기들에 만사를 잊고,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집 창문에서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나는 오냐 여기 있다 이리 오너라, 하고 대답한다. 나와 손자의 사랑이 숲속으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준 정원이다. 문득 노자(老子)의 지혜 편에 있는 자연(自然)에 대한 도(道)의 글귀가 생각난다.
“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도법(天道法) 도법자연(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 받고, 땅은 하늘을 본 받고, 하늘은 도를 본 받고, 도는 자연을 본 받는다. 하여 도(道)위에다 자연을 놓았다.
그러니 노자(老子)가 얼마나 자연을 중시 하였는지를 알 수 있지 않는가? 내가 건방지게 노자의 자연의 도(道)를 빌려 여기에 옮겨도 될는지는 모르겠다. 정원의 예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일본의 정원은 자연을 옮겨다 오밀조밀하게 꾸며놓고 인공적 자연을 즐긴다.
즉 자연을 차경(借景)하여 정원을 꾸민 것이 일본의 정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원은 자연을 차경은 하되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빌려 그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친화적으로 동화(同化)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선조(先祖)들의 정원의 철학적(哲學的) 사고(思考)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각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하나는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사고(思考)이며 또 하나는 자연을 그대로 두고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사고(思考)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자연을 위한 것인가를 따진다는 것은 나로서는 판별(判別)을 미루어 두겠다. 다만 순리(順理)에 따르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정원은 여름이 가면 가을이 다가 올 것이고 나뭇잎은 붉게 물들어 온 산과 정원이 가을의 체색으로 그 아름다움이 극에 이를 것이며 나뭇잎은 하나, 둘 낙엽(落葉)으로 쌓여 겨울을 대비하여 대지에 옷을 입힐 것이다.
내가 일궈놓은 텃밭에 상추, 고추, 고구마 등은 이미 다 거둬들였으니 그 텃밭에도 낙엽이 날아와 쌓일 태고, 떡가루 같은 눈이 쌓여 내 정원은 다시 한 번 하얀 세상을 보여 줄 것이다.
비록 오밀조밀 하지도 않고 정갈하게 꾸며지고 요상한 수석(樹石)으로 이리저리 비틀어 놓은
인공적 아름다움은 없어도 제멋대로 언덕을 이루고 산을 이루어 수목을 자라게 하고 온갖 들꽃, 풀, 돌, 동물들이 인간에게 간섭받지 않고
자연 속에서 저네들 끼리 살아가는 모습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게 해주고 사계절의 자연의 아름다운 섭리(攝理)를 새삼 깨닫게 하는 저네들이 내가 사랑하는 나의 정원(庭園)이다.